괜히 짜증내고 승질부려서 미안하고 찝찝해있었는데 한참있다 전화해서 자기가 되려 미안하다 한다.
내 어른스럽지 못함과 유치함과 옹졸함에 부끄럽게 내가 미안하다 했더니 나는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말으란다.
바보
.
.
.
.
너에게 난 무엇일까.
이기적이고 잔인하게 너를 버릴 때에도 너는 끝까지 나를 배려하며 세워줬었다.
그렇게까지 못되게/이기적으로/잔인하게/일방적으로 겨울을 도망하는 철새처럼 미련없이 자연스레 네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돌아온 철새처럼 아무죄책감없어보이고 뻔뻔하게 다시 사랑한다 말하고 너의 사랑을 요구하는 나를 아무 군말없이 다시 안아주었다
.
.
.
여자가 어느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그 어느 누군가에게 여신이 되는 것과 같다.
그것을 여자 스스로 깨닫게 하는 남자는 참 위대한 사랑을 지닌 이가 아니겠는가. 틀림없다.
.
.
.
.
.
.
120803 2:40am
아이슬란드 워크캠프에 와있다 이제 4일이 남았다 둘째날, 셋째날 까지만 해도 지내기 힘들어서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바랬는데 중순을 넘기니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아쉽다
오늘은 이탈리안 나잇을 가졌다 단테의 글과 이태리 시를 듣고 해석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느나라던 시의 정서는 정말 아름답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다른나라도 모두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있나보다 한번 부딪히게되면 그것은 내가 두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라고 너가 달리려 하지도 않고 부딪히려 하지도 않고 떨어지려 하지도 않고 상처입으려 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한다면 넌 한걸음도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맞는 말이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출발하기 전엔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들과 직면하게 됐다 그제서야 후회 아닌 후회를 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잘 하지 못하는 단체생활을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에 왜 내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오려고 했을까 내가 내 한계에 나를 몰아놓은것 같았다 극한으로. 그냥 내가 할 수 있는것만 하며 편하게 편하게 살면 되지 왜 자꾸 난 더 많은것을 더 높은곳을 바라는 것일까 내가 정말 생각없이 무모했을까 이런 후회아닌 후회를.
이 시가 다시 한번 내 정신을 환기시켜 주었다 그래 잘 하고 있다 난 항상 잘 해 왔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딱 한가지 결핍을 느낀다.
홍상수영화의 대사가 생각났다 사랑의 금자탑.
사람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자기가 못나서도 공부를 못해서도 직장이 좋지 않아서도 아니라고 진정한 짝을 찾지 못해서라고 행복이란, 사랑이란 진정한 짝을 만나 둘만의 금자탑을 차근차근 쌓는 것이라고. 외로움에 헐떡이며 이몸 저몸을 탐하지 않아도 되고 오로지 둘만의 금자탑을 쌓아가며 그 안에서 행복과 안정을 느끼는 것이라고.
.
.
.
.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오직 당신 뿐이다.
마음과 진심.
그 짧은 시간동안 나에게 정을 붙이고 마음을 주게된 것이 진심일까.
진심이란. 사람과 사람이 무언가로 ‘통해야’할 때 제 능력과 가치를 발휘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 진심은 그 사람과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만 ‘통한다’고 하는 것 같다.
그 사람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 진심은 아무리 진실되어도 영영 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진심이 통하다’라는 현상은 없는 것이다.
진심을 표현하고 통하게 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일 수 있겠다.
.
.
.
.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애석하게도
당신의 마음이 진심이라 해도 믿을 수는 있겠지만 정말 진심인지 아닌지까지엔 관심이 없다
내가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이상 나는 끝까지 당신의 진심을 진심으로 알 수 없을 것이다.
-
내가 무엇을 하고있나 싶었다
모든게 다 좋았는데. 새벽 바람도, 습기도, 공원의 불빛도.
슬프지도 못하고 취하지도 못하고.
.
단지 있었다면.
내 앞에 당신이 있었다면 다 해결되었을 문제다.
.
천천히 차례차례 깨닫는다.
왜 항상 무슨 일이든 경험 하고서야 깨닫는 걸까.
내가 바라는 삶은 이런 것이 아니라는것,
나 혼자 잘사는 게 아니라는것,
누군가가 없어서 네 생각이 나는게 아니라 네 생각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
다른이를 만날수록 그 생각이 또렷해 진다.
또한, 이 감정이 한시적인 감정이 아닐 것이라는 것.
.
.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조금만 참고 최선을 다해 그리워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그리워해주는 것.
그동안 나의 사랑을 반성하는 것.
.
.
.
.
그리고 내가 꿈꾸는게 있다면.
조용한 밤에 둘만 있는 곳에 바람을 맞으며 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천천히, 급하지 않게 나의 이 모든 이야기를 차곡차곡 가슴에서 꺼내놓는 것.
그 장면이 내가 최고로 바라고 꿈꾸는 장면이다.
.
너무 슬프다
정말 하고싶은말은 이것 뿐인데
말을 할 사람도, 글을 쓸 곳도 없다.
.
.
.
울고 싶은데 내가 울 수 있는건 기껏 울어봤자 드라마를 보고 울거나,
영화를 보고 울거나.
나를 위해서, 나로 인해서 울지는 못한다.
그
그 자리에 앉아서 그때 네가 봤던 풍경이 이런 풍경인가 하고 앉아 있었는데
.
이러면 뭐하나 생각이 들어서 그냥 일어났다.
.
그냥 내가 지금 할 수 있는건 이런 것 뿐이다.
지난 편지를 읽거나, 사진을 보거나, 네가 앉았던 곳에 앉거나.
근데 결국 모두
이러면 뭐하나 라는 생각으로 종료된다.
.
그냥 내가 지금 할 수 있는건 이런 것들 뿐이다.
.
.
.
.
.
.
.
….
이 전에는 내가 태연했었나 보다. 태연한 줄 알았겠지.
가치관이 바뀌었다고나 할까
그저 난 당신에게 속해있는게 답답했었는데.
이젠 그것이 안정이었다는 걸 알겠다.
내가 바라는 나의 삶은 나 혼자만이 잘되는 것이 아닌,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와 함께 내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이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
.
너무 그립다.
그 사람이, 그 따뜻함이, 그 다정함이, 그 존재가.
무엇
자신감은 없는데 우월감만 있다 열등감의 원인은 그것에 있다
우월감을 버려야한다 역겨운 우월감으로 덕지덕지 꽉 차있는
솔직히.
..
많은것이 변했다.
변한걸까, 원래 ‘나’로 돌아온 걸까. 원래 ‘나’로 변했다.
너의 편지는 내가 눈물이 날 만큼 슬펐지만 그래도 어린 구석이 있어 내가 울면서도 헤어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문득 지금의 당신이 궁금해졌다, 아직도 이리 어린 생각을 갖고 있을까.
내가 준 헤어짐으로 인해 당신이 많이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
.
.
.
.
요즘에야 알았는데, 내가 더이상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나는 그저 지긋하고 싫증이 나고 답답하여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자유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진정 너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닐까 하고.
서로 아웅다웅 엎치락 뒤치락하며 시간과 감정, 언어를 소비하며 너를 기다리는 것 보다,
지금처럼 말없이 자기 할일만을 하며 맘속으로만 그리며 지내는 지금이 진정 너를 기다림이 아닐까 하고.
.
.
.
‘기다린다’는 말과 ‘기대하다’는 말은 다르다.
그런데 난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기다려서 무엇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기대이지 않을까.
그저 궁금하다. 무엇이?
그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할지.
즉, 그와 내가 인연일지. 단지 내가 궁금한 것은 이것뿐이다.
너와 내가 인연일지.
.
.
.
.
.
솔직히.
헤어진 후 외로움이란 살짝밖에 느끼지 못했다.
사실 매우 외로웠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를 탐할 만큼의 외로움은 아니었다.
그저 외로움을 느낄 때 마다 너를 생각하기 일쑤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니 미움은 증발하고 미안함만이 남아있더라.
.
.
만남 후 헤어지고 나서 미운일만 기억나는 사람이 있고, 좋은일만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
.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너의 생각이 날 만큼 너는 매우 자상하고 멋진 연인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매우 형편없는 연인이었다. 이기적이었고, 거만했으며 고마워할 줄 몰랐다.
그래서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너를 생각하기 일쑤였다.
.
.
.
오늘도 계속 네가 생각나 결국 너에게 다 보내버리고 남은 세통의 편지를 꺼내 읽었다.
하지만 이내 실망했으며 다시한번 헤어지길 잘했다 생각하고 안도하게 되었다.
허무하다.
사랑이느니, 기다림이느니, 인연이니, 외로움이니 이러한 모든 것들은 그냥 나의 감상에 지나지 않았음에.
.
.
.
.
현실은 그저 난 매우 가당하고 합리적이고 실리적이고 똑똑한 이별을 한것 뿐임에.
생각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차마 글로 표현할 수 없다 ..
-
-
-
-
—
-
많은 것이 바뀌었다.
잘 살고 있다던 내 삶이 어느 순간부터 시커먼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고 잘 살고 있다던 믿음과 나에 대한 자부심은 빠져듦과 함께 기억상실증처럼 사라졌다.
나는 하마터면 그 시커먼 늪이 나의 인생이라 생각하고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빠져나오는 과정이 어려웠다기보다, 빠져나올 수 있을지 몰랐단 표현이 맞겠다. 아니, 그곳이 빠져나와야 하는, 빠져나올 수 있는 곳인지조차 몰랐었다.
빠져나오고나서 보니 나는 생각보다 인생을 매우 잘못살았었다. 그것을 꽤 일찍 알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미 겪었으니 다시는 이런 실수가 없으리라. 차라리 일찍 겪고 깨달은 것이 다행이라고까지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의 사람은 과거의 나를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내 과거에 대한 댓가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
-
-
-
—
내가 ‘살아감’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내가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
-
-
-
무엇이든 ‘중도’가 좋은 것이다.
-
-
—
요즘 하고 싶은 것 : 따뜻한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햇빛을 받으며 누군가의 팔배개를 하고 낮잠을 자고 싶다.-
-
잠결에 이상한 글씨들을 또 배출해 본다 이번 주말은 두통과 함께 했다. 너의 생각이 평소보다 많이 났다. 생각이 날 때마다 글을 쓰니, 타인이 보기엔 생각을 많이 하는 줄 알겠군. 그게 사실일 수도 있다.
-
-
-
생각은 금방금방 바뀐다.
2013년 4월 7일
장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어찌 이리 태연히 당신을 맘속에서 정리할 수 있었는가.
그렇지 못했던 이별과 무엇이 달라져서 이리 태연히 내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는가.
.
.
미래에 다시 만났으면 하는 소망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 소망은 미련과도 같다.
이제 당신은 나의 과거에는 존재하지만 미래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당신은 나의 과거에만 존재할 뿐이다.
.
.
점점 서서히 나는 벗어나고 있다 아니 벗어났을지도 모른다.
.
.
.
.
.
.
.
소소한 자신의 이야기를 할때 듣는사람에게 나를 설득시키듯이,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되도록 말하는 화법을 가진 사람이 있다. 배워야지.
.
.
꾸준히 나의 취향을 쌓아가야 겠다. 좋아하는것이 확실하다는 것은 내 정체성이 확실하다는 것과도 같다.